<귀향>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여성들의 삶을 증언에 기반해 그려낸 영화로, 오랜 침묵 속에 묻혔던 고통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글은 영화가 구현한 역사적 진실과 예술적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기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침묵과 망각에 저항하는 예술, 귀향이라는 이름의 증언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큼 오랜 시간 동안 은폐되고 억눌렸던 고통도 드물다.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가 되었던 시기, 수많은 어린 소녀들이 ‘일자리’ 또는 ‘공장 근로’라는 거짓말에 속아 전장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일본군에 의해 위안소라는 성적 착취의 공간에 강제로 수용되었고, 하루에도 수십 명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름도, 나이도 기록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고통은 철저히 지워졌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일’을 말하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 그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고, 돌아와도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영화 <귀향>은 바로 이 침묵의 목소리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2016년 조정래 감독에 의해 개봉된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인 정민이 할머니의 실제 증언을 바탕으로 기획되었으며, 시민 7만 5천여 명의 소액 후원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자본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기억의 윤리와 증언의 가치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귀향>은 단지 영화가 아니라, 집단적 기억운동의 결과물로도 볼 수 있다. ‘귀향’이라는 단어는 물리적인 고향으로의 귀환을 뜻함과 동시에, 정신적·감정적 복귀, 즉 잃어버린 존엄과 인간다움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상징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실제로 대부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살아도 말하지 못한 채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간다. 이 글에서는 <귀향>이라는 영화가 그려낸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이 어떻게 시대를 넘어 현재의 우리에게 전달되는지, 그리고 그 영화적 재현의 방식이 어떤 감정적·윤리적 진실을 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응시하는 영화의 시선과 방식
영화 <귀향>은 1943년, 경북 포항의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정민은 14세 소녀로,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공장에 취직한다는 말에 속아 중국 전선의 위안소로 끌려간다. 이곳에서 그녀는 같은 또래의 소녀 영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위안소 생활을 강요당한다. 영화는 군인들의 집단 성폭력, 감금, 구타, 병으로 인한 죽음, 시신 유기 등의 상황을 생생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묘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병든 영희가 군의관의 명령으로 생매장당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단순한 픽션이 아니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병들거나 말 안 듣는 여성들은 무참히 살해되었고, 그 시신은 야산이나 강가에 버려졌다. 이 영화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된 화면과 음악, 연출을 통해 그 깊이를 더한다. 특히 정민이 아무 말 없이 영희를 껴안고 눈물만 흘리는 장면은, 수천 개의 언어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지 않는다. 정민이 할머니가 노인이 되어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는 장면,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환영처럼 나타나는 소녀들의 모습, 춤과 그림을 통해 기억을 재현하는 상징적 장치들은 모두 ‘증언’을 넘어서 ‘공감’의 차원으로 관객을 이끈다. 특히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환상 장면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이미지로 표현되며, 육체를 벗어난 영혼들의 치유와 해방을 상징한다. 이처럼 <귀향>은 관객이 단지 피해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아픔에 '동참'하게 만든다. 영화관을 나서며 관객들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그 고통이 현재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민과 영희는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 없이 사라진 20만 명 이상의 조선 소녀들이 그들 속에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되, 특정한 인물의 이야기를 넘어 '집단의 기억'을 구현한 대표적 사례이다.
귀향하지 못한 영혼들, 우리가 지켜야 할 기억의 연대
<귀향>은 단순한 피해 고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지키는 윤리적 실천이며, 망각에 저항하는 문화적 선언이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관객은 어떤 외부의 사건을 본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짊어진 상처를 함께 체험한 존재로 변모한다. 피해자들은 단지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도 존재한다. 여전히 몇몇 생존자들은 고통 속에서 투쟁 중이며,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와 법적 책임은 실현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보상과 사과를 거부하며 역사를 왜곡하려 하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귀향>은 단순한 문화 콘텐츠가 아닌, 역사 교육과 기억 운동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단지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의무, 증언의 윤리, 그리고 진실을 지키기 위한 연대이다. 침묵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부끄러움 없이 그 앞에 서는 자세. 그것이 바로 귀향하지 못한 이들의 영혼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귀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실을 마주하고, 역사를 직시하고,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 여정은 계속된다. 우리는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할 책임이 있다. 영화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이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명확해야 한다. "아니,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당신의 이름도, 눈물도, 살아온 시간을." 그 기억이야말로 이 땅의 정의이고, 인간의 존엄이며, 영화 <귀향>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