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는 단순한 사전 제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말기, 우리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그때, 이 작은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영화의 배경이 된 조선어학회 사건과, 당시 벌어졌던 말과 글을 지우려 했던 현실, 그리고 우리가 지금도 되새겨야 할 언어의 의미에 대해 풀어보려 합니다.
조선어학회 사건과 말모이의 역사적 배경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는 우리말. 하지만 1940년대 초, 이 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위기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영화 《말모이》는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실제 역사 속 인물들과 사건을 모티브 삼아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 설립된 단체로, 우리말을 정리하고 국어 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당시 전국 각지의 방언과 단어를 수집해 조선어 사전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 작업의 이름이 바로 ‘말모이’였습니다. ‘말모이’는 순우리말로 '말을 모은다'는 뜻이죠.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이후, 일제는 조선을 철저히 일본화하려는 민족 말살 정책을 시행합니다. 조선어 수업이 사라지고, 일본어 사용이 강제되며, 언론과 문학도 검열을 당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작업은 단순한 언어 정리가 아닌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조선어학회에 참여했던 학자 33명이 체포되었고, 이들은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사전 원고는 몰수되었고, 조선어학회는 해산됐습니다. 이 사건은 훗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불리며, 말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투쟁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영화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픽션 인물을 활용해 보다 폭넓은 감정을 전달합니다. 특히 유해진이 연기한 ‘김판수’는 문맹이었지만, 서서히 말의 소중함을 깨닫고 말모이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의 변화는 단순한 인물 성장 서사를 넘어서, 우리 모두가 언어의 주인이자 지킴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과 언어 탄압 실태
1940년대 초반,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전면적인 동화 정책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단순히 지배하고 통치하는 수준을 넘어서, 조선을 ‘일본’ 그 자체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 실행됐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겨냥된 것은 바로 언어였습니다.
언어는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는 방식은 모두 언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일제는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조선어를 없애고, 일본어를 강제하려 했습니다. 이 시기 학교에서는 조선어 수업이 사라졌고, 일본어만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신문도 대부분 폐간되거나 검열을 거쳐야 했고, 창씨개명과 일본식 인사법도 의무화되었습니다.
거리에서 조선어를 쓰는 것조차 위험한 행위가 되었고, 점점 사람들은 스스로 말과 글을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소멸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의 단절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이런 시대에 맞서 싸웠습니다.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단어를 정리하고 정의를 붙이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 말이 존재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모이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이자 저항의 상징이 되었던 겁니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단어 하나를 기록하기 위해 누군가는 먼 길을 떠나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이 단순한 희생의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말과 민족을 위한 투쟁임을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말모이의 문화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
《말모이》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말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말이 사라지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일 수 있을까요?”
언어는 단지 소통의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감정을 표현하는지 모두 언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언어는 사람의 정신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렇기에 말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표현 수단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사고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영화 속 김판수는 글도 모르고, 말의 중요성도 몰랐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이 쓰던 말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모이를 지킵니다. 이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는, 우리가 모두 김판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언어를 소홀히 대하고, 외래어에 익숙해지고, 말을 잊어갑니다. 하지만 영화는 묻습니다. 말을 잊는다는 건, 곧 나를 잊는 것이 아닌가요?
디지털 시대인 지금, 지역 방언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한국어 표현조차 외국어와 혼용되어 왜곡되고 있습니다. 언어의 다양성과 뿌리를 지키는 일이 과거의 과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사실을 영화는 은유적으로 전달합니다.
《말모이》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오늘의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희생이 깃들어 있는지, 그리고 그 단어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음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영화 《말모이》는 단순한 역사극이 아닙니다. 사라질 뻔했던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굳게 싸워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말은 곧 사람이고, 언어는 곧 민족입니다. 지금 우리가 한국어로 말하고, 글을 쓰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말 하나하나를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언어를 잊고 사는지 돌아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금 우리말의 소중함을 느끼며, 내가 쓰는 말 속에 나의 정체성과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