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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와 금기의 시대 속 자유 연애의 상상력

by 제이준jun 2025. 8. 3.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는 조선 후기 유교 질서 아래 억눌렸던 성과 사랑, 자유연애의 욕망을 대담하고 관능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이 글은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을 통해 조선시대의 금기와 그 너머를 향한 욕망의 움직임을 분석한다.

엄격한 유교 윤리 아래 피어난 자유연애의 불꽃

조선시대는 유교적 이념을 국가 운영의 근본 질서로 삼았던 사회였다. 특히 성과 결혼,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한 규범과 도덕적 금기를 바탕으로 사회 구조가 유지되었다. 여성은 정절을 생명처럼 지켜야 했고, 남성은 도덕적 위선 속에서 욕망을 억제하는 척 살아가야 했다. 그러한 조선 사회의 틀은 표면적으로는 질서와 도덕을 강조했지만, 그 이면에는 욕망과 위선, 억압과 반항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유연애란 개념은 실로 금기 중의 금기였다. 사랑은 개인의 감정보다 가문과 예법의 문제였고, 결혼은 당사자의 의사보다 부모와 중매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낭만적 사랑은 문학 속의 환상이었으며, 현실에서 사랑은 감추어야 할 일탈로 여겨졌다. 하지만 욕망은 억제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본능, 감정, 사랑하고 싶은 열망은 시대의 통제를 피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문학과 민속, 구전 이야기 속에는 유교적 질서 아래 감추어진 사랑 이야기들이 실재했으며, 이러한 소재는 훗날 현대 문화 콘텐츠에서 강렬한 상상력의 자양분이 되었다. 2003년 개봉된 이재용 감독의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억압된 시대 분위기 속에서, 자유연애의 상상력을 대담하게 펼쳐 보인 작품이다. 원작은 프랑스 고전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이며, 이를 조선 시대의 양반 사회로 옮겨와 격정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의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영화는 단순한 에로틱 사극을 넘어, 조선 유교 사회에서 ‘욕망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 치열한 탐구이기도 하다.

 

금기의 시대에 던져진 자유연애의 도발, 영화 속 인물과 욕망의 역학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는 조선 후기 양반 사대부 사회를 배경으로, 사랑과 육체, 유혹과 배신, 자유와 파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는 고전적인 권선징악이나 도덕의 주입이 아닌, 철저히 인간 본연의 욕망을 중심에 두고 인물 간의 감정선을 직조해 낸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연애가 금기였던 시대에서의 연애’라는 역설을 전면에 내세운다. 주인공인 조원(배용준)은 미색과 언변, 매혹적인 분위기로 조선 사대부 여성들의 마음을 손쉽게 사로잡는 인물이다. 그는 양반가 규수들과의 비밀 연애를 즐기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도덕적 위반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고, 감정을 주고받는 것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권리로 여긴다. 조원의 상대역인 조 씨 부인(이미숙)은 기품과 정숙함의 상징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조선 사회가 강요하는 ‘정숙한 과부’라는 가면 뒤에 격렬한 욕망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녀는 조원의 유혹 게임에 가담하며, 자신의 정조와 감정을 시험하는 위험한 선택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휘말린 숙부인 숙(전도연)은 순수하고 내면이 깊은 인물이다. 처음에는 조원의 접근에 당황하고 경계하지만, 점차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나 조원의 유희는 결국 숙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그 과정에서 조원 자신도 의도하지 않았던 감정에 사로잡히며 흔들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자유연애’란 단순히 금기를 깨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아를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 조 씨 부인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정절과 침묵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로 삼고자 한다. 조원 역시 단지 쾌락의 추구가 아닌, 진실한 감정과 관계의 복원을 갈망한다. 숙은 비로소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 임을 인식하며, 사회가 부여한 순결이라는 껍질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모두 비극으로 끝난다. 자유는 고통을 낳고, 연애는 희생을 요구한다. 영화는 자유연애가 당대의 억압된 질서 속에서 얼마나 위험하고 불가능한 행위였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그 욕망이 얼마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절절히 드러낸다. 감독 이재용은 고전 문학을 조선의 문법으로 치환하면서도, 고증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 감수성을 적극 반영했다. 감각적인 의상과 세트, 절제된 연기와 긴장감 넘치는 시선의 교환, 클래식 음악과 전통 국악이 교차하는 사운드트랙 등은 모두 억제된 시대 속 감정의 폭발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여성 인물들이 수동적 객체가 아닌, 욕망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은 이 영화가 단지 에로틱 사극이 아닌, 젠더적 관점에서의 재해석으로도 읽히게 한다. 조 씨 부인의 욕망, 숙의 해방, 그리고 조원의 자각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의 억압을 넘어서려는 ‘자기 사랑’의 과정이기도 하다.

 

금기를 넘은 사랑, 조선이라는 시대의 경계를 흔들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는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다. 그것은 유교적 질서 속에 가려진 조선 후기 인간 군상의 감정과 본능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억압과 위선, 그리고 해방과 자각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자유연애는 오늘날 누구에게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것이 곧 죄요, 파멸이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시대에서 감히 사랑하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 사랑이 단순한 육체적 욕망이 아닌, 자기 존재의 확인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영화는 자유연애의 열망이 왜 억눌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그 욕망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오히려 더 치열하고 뜨겁게 존재했음을 드러낸다. 조 씨 부인의 불꽃같은 눈빛, 숙의 떨리는 숨결, 조원의 흔들리는 감정은 모두 시대의 억압을 뚫고 나온 사랑의 증거이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조선이라는 금기의 시대에서 사랑할 수 있었겠는가? 연애가 죄로 여겨졌던 시대, 그것을 선택할 용기가 있었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사랑의 자유는 과연 진정 자유로운가?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는 그 질문을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게 만든다. 금기의 시대 속에서 피어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되찾으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이 죄가 되던 시대, 그 죄를 짓는 것이 곧 가장 인간다운 선택이었다는 사실. 그 역설을 가장 아름답고 처연하게 그려낸 영화가 바로 <스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