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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로 본 일제강점기 시대의 욕망, 계급, 그리고 억압의 구조

by 제이준jun 2025. 8. 3.

영화 아가씨 포스터

 

영화 <아가씨>는 일제강점기라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과 하녀, 귀족과 사기꾼, 욕망과 억압이 교차하는 계급의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이 글은 영화의 심층적 구조를 통해 당대 한국 사회의 위계와 욕망의 이면을 조명하고자 한다.

욕망의 언어로 재구성된 식민지 시대의 계급 드라마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는 세련된 미장센과 관능적 연출, 그리고 교묘한 플롯 구조로 전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 얽혀 있는 계급, 성, 민족, 식민지의 욕망과 억압이다. 영화는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하되, 배경을 1930년대 조선으로 바꾸어, 일제강점기의 계급 구조와 여성의 삶을 보다 생생하고 복합적으로 묘사했다. <아가씨>는 표면적으로는 귀족 여인과 하녀, 사기꾼이 엮인 사랑과 속임수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철저한 위계와 권력 구조, 그리고 그것을 통해 움직이는 인간의 숨겨진 욕망이 숨어 있다. 이 작품은 단지 누 아르적 반전이나 에로티시즘을 넘어, 식민지 조선이라는 역사적 시공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불균형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당시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 하에 있었고, 권력은 친일파와 일본 귀족, 그리고 경제력을 가진 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하층민과 여성, 식민지 백성들은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이용당하는 객체로 존재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왜곡되었고, 사랑마저도 거래되고 조작되었다. 영화 <아가씨>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아름다운 영상과 장르적 구성 속에 절묘하게 녹여내며, 관객에게 복잡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서론에서는 영화 <아가씨>의 기본 구조와 역사적 배경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 글에서 다룰 핵심 키워드인 ‘계급’과 ‘욕망’, ‘식민지 권력’의 교차 지점을 제시하였다. 이제 본론에서는 영화 속 인물들과 장면들이 어떻게 그 구조를 구현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하녀와 아가씨, 조선과 일본, 위선과 사랑의 경계

영화 <아가씨>는 삼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하녀 숙희(김태리)가 귀족 여인 히데코(김민희)의 곁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제2부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시점으로 같은 사건을 다시 조망하며, 제3부에서는 히데코와 숙희가 권력을 탈출하며 해방되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구조는 단순한 플롯의 반전을 넘어서, 시선을 전복시키고, 진실과 허위, 억압과 저항의 위치를 끊임없이 바꿔가는 장치로 기능한다. 숙희는 본래 도둑 가문 출신의 하층민이며, ‘백작’이라는 사기꾼과 공모하여 히데코를 유산 상속 후 정신병원에 보내려는 계획에 가담한다. 하지만 숙희는 점점 히데코에게 진심으로 끌리게 되고, 계략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히데코는 표면적으로는 일본 귀족 집안의 후계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삼촌 고즈키(조진웅)의 집에서 철저히 통제되고 착취당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고즈키는 희귀한 일본 서적과 포르노그래피 수집을 통해 지식계급인 척하지만, 실상은 여성을 도구화한 폭력적인 권력자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당시 계급과 권력의 구조를 은밀하게 해체한다. 숙희는 하녀지만 주체적이고 생생한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히데코는 귀족이지만 실상은 억압당한 피해자이다. 반면 백작은 귀족의 외양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의 정체는 사기꾼이며, 고즈키는 지식인의 얼굴 뒤에 성적 폭력성을 숨긴 가부장의 전형이다. 이처럼 <아가씨>는 전통적인 위계 구조를 뒤집으며, 누가 진짜 ‘주인’이고 누가 ‘객체’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이야기가 식민지 조선이라는 배경 위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고즈키는 조선인이지만 일본 귀족의 신분을 얻기 위해 일본어를 쓰고, 일본식 건축 양식의 저택을 짓고, 일본 서적을 수집하며 자신을 ‘문명화된 자’로 포장한다. 이는 당시 많은 조선 지식인, 친일파가 자신들의 식민 지배에 대한 열등감을 일본의 권위로 덮으려 했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한편,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은 이러한 억압 구조를 전복시키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두 여성은 서로를 통해 억압에서 벗어나고, 결국엔 자신을 지배하려는 모든 남성 권력을 뒤로한 채 도망친다. 이 도피는 단순한 탈출이 아닌, 계급과 민족, 성별 권력에 대한 거부 선언이자, 스스로의 욕망과 자유를 선택한 혁명적 행위이다. 이처럼 <아가씨>는 치밀한 플롯과 계급적 장치, 그리고 상징적 공간들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권력 구조를 해부하고, 그 틈새에서 태어난 욕망과 연대를 시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식민의 시대, 계급의 얼굴 뒤에서 속삭인 진짜 자유

<아가씨>는 단지 에로틱한 드라마도, 반전의 재미를 가진 범죄극도 아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계급과 권력, 민족과 젠더, 욕망과 자유라는 인간 사회의 복잡한 얽힘을 풀어낸 정교한 비판극이다. 박찬욱 감독은 겉으로는 아름답고 우아하게 포장된 인물들과 공간 속에, 그 시대의 뿌리 깊은 억압 구조를 숨겨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탈출하는 두 여성의 연대는, 관객에게 단순한 감정 이입을 넘어, 강력한 해방의 상상력을 제공한다. 식민지 조선은 권력의 정점에 친일 세력과 일본 제국주의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조선의 민중, 특히 여성과 하층민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말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으며,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아가씨>는 말한다. 억압은 영원하지 않으며, 진짜 사랑과 연대는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히데코와 숙희의 도피는 단지 남성을 피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당대의 모든 권력 구조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과정이었다. 또한 이 영화는 역사적 맥락을 단지 배경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식민 지배와 권력 구조가 인간관계의 감정, 욕망, 거짓, 진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며, 식민의 폭력성이 단지 외적 침략이 아닌 내면화된 억압으로 작용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결국 <아가씨>는 시대극이면서도 동 시대성을 지닌 작품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 차별, 젠더 억압, 권력의 위선 등을 마주하게 된다. 히데코와 숙희의 이야기는 과거 속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현실과 닮아 있다. 그렇기에 <아가씨>는 단순한 장르영화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것은 ‘말하지 못했던 자들이 말하는 이야기’, ‘보이지 않았던 자들이 시선을 되찾는 이야기’이며, 그 안에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낸 조선 민중의 숨결과 울분이 녹아 있다. 아름답지만 불편하고, 감각적이지만 철학적인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라는 잔혹한 시대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갈망이 어떻게 피어났는지를, 잊지 못할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