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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와 동시대 실학자 이야기

by 제이준jun 2025. 8. 11.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영화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과 어부 창대의 특별한 인연을 그린 작품입니다. 바다 생물 연구서 ‘자산어보’의 탄생 과정을 따뜻하게 담아내며,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실학자들과의 사상적 연결고리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와 시대적 배경, 그리고 동시대 실학자들의 활동을 함께 살펴봅니다.

영화 줄거리 — 유배지에서 만난 학문과 우정

영화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전남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설경구 분)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는 형 정약용과 함께 서학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외딴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바다 생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 분)를 만나게 됩니다.

창대는 가난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정약전은 그의 지식을 빌려 조선의 바다 생물과 해양 환경을 기록한 책 ‘자산어보’를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리며, 학문과 우정이 어떻게 결합해 역사에 남는 성과를 이뤘는지 보여줍니다.

시대적 배경 — 조선 후기와 실학의 흐름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초 조선, 세도 정치와 사회 혼란이 뒤섞인 시기입니다. 당시 조선은 서양 문물과 천주교가 전래되며 사상적 변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동시에 이를 억압하는 보수적 정치 체제와 강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신유박해로 많은 천주교 신자와 지식인이 처형되거나 유배되었습니다.

이 시기 실학은 조선 사회의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등장한 새로운 학문이었습니다. 농업 개혁, 상공업 진흥, 과학기술 활용 등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 실학자들은 기존 성리학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정약전 역시 실학의 일원으로, 과학적 관찰과 기록을 중시했습니다.

동시대 실학자들과의 비교

정약용(1762~1836): 정약전의 동생이자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 인물.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정치·경제·법률·행정 전반에 걸친 저작을 남겼습니다. 두 형제는 학문적 성향이 비슷했으나, 정약용이 주로 육지에서 정치와 행정 개혁을 고민했다면, 정약전은 바다와 섬에서 해양 생태와 실용학문에 몰두했습니다.

박제가(1750~1805): 북학파 실학자로 상공업 진흥과 해외 무역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청나라 문물 수용을 주장하며 개방적 사상을 펼쳤습니다. 정약전의 바다 생물 연구 역시 개방과 실용이라는 점에서 박제가와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홍대용(1731~1783): 천문학, 수학, 지리학 등 과학 분야에 조예가 깊었던 실학자. 그는 지구 자전설을 주장하고, 자연과학적 사고를 조선에 퍼뜨렸습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과학적 분류와 관찰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익(1681~1763): 농업 중심의 개혁론자이자 실학 사상의 기반을 다진 인물. 백성을 위한 정책과 실생활 개선을 중시했던 그의 철학은 정약전의 학문적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자산어보의 학문적 가치

‘자산어보’는 단순한 어류 도감이 아니라, 당시 조선의 해양 생태계와 어업 문화, 바다 마을 사람들의 삶을 담은 종합 기록입니다. 어류, 갑각류, 해조류를 세밀히 관찰하고 분류했으며, 각 생물의 서식지, 먹이, 어획 방법까지 기록했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해양학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또한, 서민 어부의 지식을 학문으로 끌어올린 점에서 당시 신분 질서를 넘어선 진보적인 시도였습니다.

영화의 의미 — 흑백 영상에 담긴 사색

감독은 흑백 촬영을 통해 군더더기 없는 시대극의 미학을 구현했습니다. 화려한 색채보다 인물의 표정과 대사, 바다와 하늘의 질감을 강조하여 관객이 그 시대의 공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자산어보>는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니라, 조선 후기 실학과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 작품입니다.

정약전과 창대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친구, 연구 동반자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며, 지식의 공유와 상호 존중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결론

영화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실학의 가치와 인물들의 인간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동시대 실학자들과 비교했을 때, 정약전은 바다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실용학문을 꽃피운 독창적인 학자였습니다. 이 영화는 학문이 단지 글과 책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