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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과 민주화 운동의 분기점, 진실을 향한 국민의 투쟁

by 제이준jun 2025. 8. 6.

영화 1987 포스터

 

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6월 항쟁의 전개를 따라가며,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전환점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다. 고위 권력층의 은폐 시도와 이에 맞서는 검사, 기자, 대학생, 평범한 시민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지키고자 한 개인들의 용기와 연대가 민주화의 물결로 이어진 과정을 조명한다. 본문에서는 영화의 전개, 인물 묘사, 역사적 의의 등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을 분석한다.

한 청년의 죽음에서 비롯된 국민의 각성: 영화 1987의 서사 구조

2017년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은 한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에서 시작된 진실 추적이 어떻게 민주화의 물결로 확산되었는지를 집요하고도 긴박하게 따라간 작품이다.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인물군이 교차하며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가는 구조를 취함으로써, 관객이 그 시대의 공기와 긴장감을 오롯이 느끼게 만든다. 영화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 조사를 받던 중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당시 경찰은 이를 단순 질식사로 발표하며 은폐를 시도했지만,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해명이 오히려 국민적 분노를 자극했다. 이 말도 안 되는 발언은 곧 상징어가 되었고, 언론과 양심 있는 공무원들의 반발이 이어지며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탁월함은 하나의 주인공이 아닌, 여러 인물들의 시선과 행동이 얽히며 서사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권력의 입장에서 사건을 은폐하려는 법무부장관과 경찰 고위층,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검사 최환(하정우), 기자 윤상삼(이희준),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그리고 무심했던 대학생에서 각성하게 되는 연희(김태리)까지. 이 다양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위치에 서 있었지만, 결국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한 줄기 흐름’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구성이 주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민주화는 어느 영웅 한 명이 이룬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과 공직자, 학생, 언론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용기 내어 행동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들을 다루며 영웅 서사 대신 ‘시민 서사’를 택한다. 연희는 특히 상징적인 인물로, 정치에 무관심했던 평범한 청년이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겠는가?” <1987>은 단지 박종철이라는 한 청년의 죽음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폭력, 권력의 오만, 진실의 은폐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결국엔 6월 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분기점의 기록이다. 영화는 실제 사건의 디테일을 고증하면서도 영화적인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분노하고, 눈물 흘리게 만들고, 끝내 고개를 들게 만든다. 이처럼 <1987>은 ‘기억을 위한 영화’이자, ‘각성을 위한 영화’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죽음과 많은 이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진실을, 이 영화는 정확히 보여준다.

 

은폐와 폭로, 침묵과 외침: 영화가 재현한 민주화 운동의 현장

<1987>이 보여주는 민주화 운동의 가장 인상적인 측면은, 그것이 단지 시위의 장면이나 대규모 집회의 이미지에만 의존하지 않고, 권력과 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미시적 갈등을 묘사한다는 점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공문서 조작, 기자들의 끈질긴 취재, 교도관의 윤리적 갈등, 검사들의 내부 대립은 모두 ‘민주주의는 투표가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한다. 특히 극 중 검사 최환은 당시 정부의 지침을 거부하고, 사건을 서울지검에 회부하며 은폐를 막는다. 그는 명확히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캐릭터이며, ‘정권의 개’가 되지 않겠다는 대사는 많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기자 윤상삼은 한 장의 사체 사진을 들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한 컷이 결국 국민의 분노를 일깨우고, 진실을 은폐하려던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은 교도관 한병용이다. 그는 안기부 요원이 감시하는 가운데 수감자에게 진실이 담긴 편지를 전달하려 한다. 그의 행동은 소박하지만, 바로 그 ‘작은 용기’ 하나가 진실의 불씨를 살린다. 그리고 그 불씨는 연희라는 젊은 여대생에게 전달되며, 거리로 나온 민중의 외침으로 확장된다. 이처럼 영화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연결된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들이 어떻게 하나의 역사적 물결을 만들어내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실제 6월 항쟁은 박종철의 죽음과 그에 대한 은폐가 도화선이 되었다. 이어 벌어진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국민적 분노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당시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6·29 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승리로 평가되며, <1987>은 이 흐름을 감동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낸다. 영화는 클라이맥스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는 장면을 통해 민주주의란 누군가가 대신 싸워주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싸워야 지킬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책상을 탁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시대를 비웃는 말이, 이제는 시민의 외침으로 바뀌는 순간, 관객은 그 감정의 폭발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이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1987>은 민주화 운동의 거대한 서사를 소시민의 시선에서 재구성하며, 관객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시된다. 진실을 밝히는 데 필요한 것은 큰 힘이 아니라, 작은 용기들의 연대라는 것. 이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역사영화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담은 시민영화라 할 수 있다.

 

기억의 책임, 행동의 유산: 우리가 1987을 되새기는 이유

영화 <1987>은 단지 36년 전의 사건을 되짚는 회고적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를 향한 선언이며,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고 유지해야 하는지를 묻는 살아 있는 질문이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라, 항상 진행형이며, 그 진행을 가능케 하는 것은 기억과 행동, 참여와 책임이다. 박종철의 죽음이 말해준 것은 단순한 국가 폭력의 실태가 아니라, 시민이 침묵할 때 권력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였다.

이 영화는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역사적 사건을 정교하게 고증하고, 인물들의 심리와 윤리적 갈등을 세밀하게 다루며 관객에게 현실적 감각을 제공한다. 특히 관객은 연희를 통해 영화 속 세계와 연결되며, 무력한 한 개인이 어떻게 시대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를 체험한다. 영화는 그녀의 각성을 통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죄악’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1987>은 대한민국 현대사가 ‘피로 쓰여진 역사’ 임을 상기시킨다.

자유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목숨과 고통, 눈물과 연대 위에 겨우 지켜낸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는 그 유산 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볼 책임이 있다. 민주주의는 투표소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진실을 마주할 용기, 거짓에 저항하는 힘,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모여야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칠 때, 우리는 과거를 보는 동시에 미래를 본다. 그 장면은 단지 역사 재현이 아닌, 오늘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잇고 있는지를 묻는 거울이 된다. <1987>은 그래서 우리가 반복해서 봐야 할 영화다. 단지 사건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되새기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행위가 바로 기억의 윤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이 정신을 필요로 한다. 진실은 여전히 위협받고, 권력은 항상 감시를 필요로 하며, 시민의 각성은 끊임없이 요구된다.

영화<1987>은 그 시대를 기억하는 방식이 곧 우리가 어떤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물음은 계속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